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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청문회를 끝내고>


2주 전, 최순실 국정조사 특위 의원인 손혜원씨가 자기는 금융 분야는 잘 모른다면서 도와달라고 했다. 

흔쾌히 응락했다. 매일매일 상임위와 예산위 때문에 밤 늦도록 일하는 친구가 도와달라는데 안 도와줄 사람이 없다.

응락과 동시에 재벌문제에 관해 최고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교수에게 같이 도와주자고 종용을 하니 그도 단박에 동의했다. 

지식 만이 아니라 그는 나보다 국회 청문회 경험이 많다. 박용진 의원과 제윤경 의원의 동의를 받아 그들의 보좌관인 김성영씨와 여경훈 씨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김한정의원실의 보좌관들과도 조사하면서 획득한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준비하면서 몇가지 고려할 것들이 있었다.



첫째, 금융 분야는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가랍시고 자기 딴에는 중요해 보여도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질문을 해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상대는 그저 계속 부인하거나 모른다고 할 것이고, 국민들은 의원이 왜 저런 질문을 하는지도 모른 채 

질의가 끝나고 만다. 국민들 시각에서 이해하기 쉽게 질문을 만들어야 했다. 


둘째, 국회의 국정조사 질의 방식이 매우 비효율적이다. 각 회합마다 각 의원에게 돌아가는 시간은 7분이다. 

그 안에 제대로 심문하기가 어렵다. 외국의 경우에는 증인 한명 만을 앉혀 놓고 집중 심문하거나,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전문성이 있는 의원에게 시간을 양보해서 계속 한 사람이 심문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안 된다. 증인이 일부러 말을 천천히 하면서 시간을 끌면 몇 개 물어보지도 못하고 

끝난다. 의원들이 무례하게 중간을 말을 끊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할 때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어진 시간 안에 상대방이 길게 답변할 여유를 주지 않도록 하면서 한가지 주제로 7분 안에 질의 응답을 완결하는 것이 좋다.



셋째, 질문을 담당할 손혜원 의원은 기업 금융에 대해선 잘 모른다. 대개의 경우 전문성도 떨어지고 

열심히 공부할 시간도 많지 않은 의원들, 능력이 안되거나 게으른 의원들은 보좌관이 준비해 준 각본을 

그냥 읽는다. 상대방이 회피성 답변을 하면 즉각적인 대응이나 추궁을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자연히 의원들은 제보에 의한 폭로에 매달리게 된다. 우리는 제보에 의존하지 않고, 

질문할 사람을 코칭도 하면서, 그의 능력도 감안한 질문 전략을 짜기로 했다.

손혜원 의원은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이면서도 꾸준히 우리들 얘기를 듣고 물어가면서 자기 

나름대로 흐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일생을 대중을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짰던 

사람인만큼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를 손의원은 잘 안다.



넷째, 아무러나 상대방은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다. 순순히 시인하면 뇌물죄로 감옥에 가야 한다. 

그것을 감안하면서 그들이 꼼작 못하고 실토하도록 추궁하는 대신 국민이 듣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 문안을 만들어야 했다. 그들과 질의응답을 하되 그들의 응답 태도에 질의응답의 

성과가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우리는 질문자가 증인에게 묻고 난 후 

그 답변을 기초로 참고인으로 출석한 우리들에게 질문을 해서 김상조 선생이나 내가 관전 시각을 제공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내 개인적인 신상 경험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구체적인 예로서 

보여주는데 쓸모가 있다고 봤다. 손의원의 질문지는 미리 준비하고, 우리는 그날 미리 오간 청문회 흐름에 

맞추어 즉흥적으로 하기로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 내, 청문회 흐름에 맞추어 발언을 끝내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중간 휴식 시간 중에도 계속 어디에 촛점을 새롭게 맞출지 논의했다.

팀웍이 좋았다. 대의를 위해 자기 시간을 내는데 모두들 인색하지 않았다. 손의원은 자기 생색을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데 더 무게를 두었다.

결과는 아쉬운대로 조금은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김상조 선생의 활약이 발군이었다. 뒤에서 도와준 다른 분들 덕도 크다.

저녁 시간이 되면서 김선생과 나에게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지만 우리는 모두 사양했다. 

우리들 이름을 팔려고 한 일이 아니었다. 청문회가 밤 늦게 끝난 후 우리끼리 맥주 한잔 마시고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우리는 그만이다.

하지만 마지막 마무리하는 말을 남기고 싶다.

이번 청문회는 정경유착 청문회다. 여기 앉아있는 그룹 총수들은 두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기 능력 때문에 

지금 위치에 다다른 것이 아니다. 아버지 덕분에 지위를 얻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대부분 죄를 져서 감옥에 

갔다왔거나 기소 중이다. 그런데 바로 이들이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아버지 덕분에 돈과 권력을 얻은 

전과자들이 한국경제를 이끈다는 이 사실이 한국사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들은 이들을 최순실 게이트 공범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들은 공범이 아니고 주범이다. 

정경유착의 토대가 있기 때문에 최순실도 가능한 것이다. 초법적인 재벌은 항시적 몸통이고 최순실은 지나가다 

걸리는 파리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경유착을 못 끊는 이유는 단순하다. 재산과 경영권을 세금 안내고 세습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 탐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아마 여기 온 분들의 자손은 2-30년 후에 또 감옥에 가거나 이런 자리에 나올 것이다.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그것은 그들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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