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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사화

 

발생시기 - 1498년

 

당시의 왕 - 연산군

 

발생이유 - 사림들을 몰아내려는 훈구세력들은 당시 사림세력을 이끌던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을 핑계로 삼았다. '조의제문'은 <초한지>의 항우가 초나라의 어린 왕을 몰아낸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으나, 유자광을 비롯한 훈구세력들은 이것이 세조가 단조을 몰아내고 죽인 것을 빗대어 쓴 글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사사건건 트집잡던 사림들을 싫어하던 연산군은 그 말을 냉큼 받아들였다.

 

발생결과 - '조의제문'을 쓴 '김종직'은 이미 죽었으나, 연산군은 시신에 채찍질을 가하는 부관참시라는 형벌을 내리고 그의 제자들과 후배들의 대다수가 관직에서 쫓겨나거나 먼 곳을 귀양을 떠나게 되었다. 

 

 

 

갑자사화

 

발생시기 - 1504년

 

당시의 왕 - 연산군

 

발생이유 - 간신 '임사홍'은 연산군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비밀을 연산군에게 일러주게 된다. 뒤늦게 어머니의 한맺힌 죽음을 알게 된 연산군은 할머니인 신씨 부인에게서 피 묻은 적삼과 함께 억울한 사연을 듣고는 처절한 복수를 시작한다.

 

발생결과 - 자신을 길러 준 어머니 정현왕후 윤씨를 궁에서 쫓아내고(왕과나에선 궐에서 아직 잘 살고 있죠^^) 사약을 내려 어머니를 죽게 하는 데 찬성하거나 관련이 된 자들은 물론, 후궁과 그 자손들, 그리고 내시와 궁녀들까지 모조리 죽이고 말았다(대장금에서도 장금의 아비 서천수가 이 일에 관련되어 잡혀가곤 했죠.). 이 일로 인수대비와 정귀인과 엄귀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보너스 -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은 경연과 사간원, 홍문관 등을 모두 없애버렸고, 한글로 쓰여진 투서들이 나붙자 한글 또한 쓰지 못하게 하였다.

 

 

 

기묘사화

 

발생시기 - 1519년

 

당시의 왕 - 중종

 

발생이유 - '위훈삭제사건'에 대한 반격으로 훈구세력들은 조광조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희빈 홍씨를 이용하여 왕이 자주 거니는 후원 길목에 꿀로 '주초위왕'(조씨가 왕이 된다)이라 써 놓았고, 이를 벌레들이 갉아먹었다. 이는 곧 중종의 눈에 띄었고, 안그래도 자기 생각보다 앞서나가는 조광조에게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중종에게 좋은 빌미가 되었다.

 

발생결과 - 조광조는 사약을 받았고, 사림세력들은 다시 한 번 큰 화를 입게 되었다. 이는 중종의 개혁정치가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을사사화

 

발생시기 - 1545년

 

당시의 왕 - 명종

 

발생이유 - 명종이 즉위하자 대윤(장경왕후 윤씨의 오라비인 윤임을 중심으로 한 인종 지지세력)과 소윤(문정왕후 윤씨의 오라비인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명종 지지세력)의 싸움은 소윤의 승리로 끝났다. 짧았으나 인종의 통치기에는 기묘사화 때 관직을 떠났던 많은 사림들이 등용되어 있었으므로 윤원형은 이들을 몰아낼 궁리를 한다. 윤원형은 윤임이 중심이 되어 다른 사람을 왕위에 올리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를 구실로 문정왕후는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들여 죽이고 귀양을 보냈습니다.

 

발생결과 - 윤임을 비롯한 대윤세력과 인종 시기 등용되었던 사림세력들이 귀양을 가거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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